바라 이맘바라

바라 이맘바라는 아마도 럭나우의 가장 인지도가 높고 인기 있는 상징이며, 일년 내내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.

기근 때 아와드 사람들에게 일을 제공하기 위한 구호사업으로 건설된 바라이맘바라는 18세기 나왓 아사프두둘라에 의해 건설되었으며, 그 이름은 본질적으로 큰 예배 장소로 통한다. 섬세한 아치와 자로카스(창문)를 가진 그것의 건축은 라즈푸트, 무굴, 고딕풍의 영향을 자랑한다.

바라 이맘바라

루미 다와자

터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고대 문과 동일한 디자인으로, 루미 다와자는 아와디 나왓인 나와즈 아사프-두라. 터키문이라고도 불리는데, 가장 위쪽에 8면 우산 모양의 구조물이 장식되어 있다. 이제 럭나우의 상징인 루미 다와자는 일찍이 올드 시티의 입구로 사용되었고, 60피트 높이까지 치솟았다. 1784년의 기근기에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건설되었다. 이 문의 건축 양식은 나워비가 뚜렷하게 나타나며, 사용된 재료에 의해 무굴식물과 차별화되었다. 후자는 석회를 입힌 벽돌을 사용한 형태로서, 석회를 입힌 벽돌을 사용한 형태로서, 이 형태는 더 세밀하게 조각할 수 있어,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.

그 다라와자는 복잡한 꽃 조각들을 자랑한다. 전성기에 관문은 아치에서 물기가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등롱이 아치 꼭대기에 있었다.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루미 다와자가 꼭 봐야 한다. 거의 모든 안내 관광과 문화 유산 산책은 그들의 여행 일정에 이 아이콘을 특징으로 한다.

루미 다와자

레지던트

계단식 잔디밭과 정원으로 둘러싸여 곰티강이 내려다보이는 레지던시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. 원래 이곳은 1780~1800년 나왓 사닷 알리칸 통치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의 대표인 영국 장군을 위해 주택가, 무기고, 마구간, 조제소, 예배소 등의 대규모 단지로 지어졌다. 오늘날, 그 건물의 폐허는 이전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으며, 사람들이 방문하는 동안 식민지적 매력에 흠뻑 젖게 한다. 레지던트의 첫 레지던트인 존 베이리의 이름을 딴 베이리 가드 게이트는 여러분이 안에서 보게 될 건축물과 디자인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. 1857년 세포이 폭동 때 완전히 파괴된 금고와 그 당시의 용감한 병사들을 기리는 대리석 명패는 본관을 향해 걸어가면서 보게 될 두 건물이다. 여전히 복잡한 조각들이 있고 높은 천장이 특징인 연회장은 중앙에 예쁜 분수대가 있어 웅장한 무도회 춤과 화려한 파티의 시간으로 여러분을 데려다 줄 것이다. 홀 맞은편에는 폭동 당시 영국인들의 피난처로 이용되던 페이러 박사의 집, 임시병원이 서 있다.

레지던트 박물관은 1857년 일어난 반란의 시각적 세부사항을 보여주는 사진, 그림,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다. 나왓과 결혼한 외국인 베굼 막하라 알리야가 점령한 여단 메스, 베굼 코티 외에 영국인과 그의 아내의 주요 장군 중 한 명에 대한 기념비도 있다. 관광객들은 레지던트 근처의 교회 유적지를 방문할 수도 있다.

레지던트